[THE 인터뷰] 탈북 1호 웹툰 작가 최성국[출저:소년조선일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2.02 조회수 188

"분단된 南北 문화 장벽 허무는 공감 웹툰 만들어갈래요"


사장 : "용철씨, 설비 좀 수리해 주고 와요."

용철 : "알갔습니다! 목숨 바쳐 무조건 완수하갔습니다."

사장 : "아니 목숨은 왜 걸어? 편하게 해!"


네이버 베스트도전 코너에 연재 중인 웹툰 '로동심문의 한 장면이다. 탈부자인 용철이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통해 남북의 문화 차이를 소개한 이 웹툰의 인기는 그야말로 뜨겁다. 정식으로 연재되는 웹툰은 아니지만, 회당 조회 수가 평균 2만건을 꾸준히 기록할 정도다. '로동심문'을 탄생시킨 장본인은 국내 첫 '탈북 웹툰 작가' 최성국(36)씨다.



지난 29일 오후, 서울 강남의 작업실에서 만난 최씨는 '로동심문' 22화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다. 

"매주 수용일 연재를 하다 보니 화요일이 가장 정신없는 날이에요. 그림은 다 그렸고 이제 대사를 앉히는 일만 남았는데 쉽지 않네요(웃음)."


웹툰 '로동심문' 뒤에는 탈북 6년차인 최성국씨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이 녹아있다.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북한에서 아동미술학을 전공한 촉망받던 만화가였다. "어렸을 대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그림을 잘 그려서 고등중학교 4학년(우리나라의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그림 대회에 나가서 천재 소리도 들었어요."


그림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17살이라는 어린 나이네 북한 만화영화의 산실인 '조선 426아동영화촬영소'에 원도가(애니메이터)로 들어갔다. 8년간 제작에 참여한 작품만 학습만화인 '령리한 너구리'를 비롯해 무려 100여 편에 이른다.


"TV 애니메이션이라고 하죠? 북쪽 표현으로는 아동영화라고 하는데, 그런걸 만드는 일을 했어요. 미국 디즈니사의 '라이언 킹'이나 '포카혼타스' 같은 것들을 흉내 내 외국에 내다 팔기도 했고요. 그런데 내용이 우리나라처럼 재밌진 않아요. 주로 당에 대한 충성심이나 미국에 대한 투쟁심을 고취하는 내용이죠(웃음)."


원도가로 승승장구하던 최씨는 2002년 돌연 촬영소를 그만뒀다. 매달 고기와 설탕을 배급받고 연말이면 텔레비전이나 냉장고까지 받을 수 있는 '꿈의 일터'였지만 일에 대한 회의를 느꼈기 대문이다. 그는 폐기로된 컴퓨터를 재조립해 파는 일로 생계를 꾸렸다. 그러던 중 한국 영상물을 CD로 복사해 팔다 보위부의 감시 대상이 됐고 함경남도로 추방당했다.


"2006년 한국영화 유포죄란 '중대 혐의'로 체포됐지만, 다행히 그동안 쌓은 공적이 있어서 6개월 만에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죠. 그때 도저히 이곳에선 살수 없을 것 같아서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2010년 9월, 압록강을 건너 최씨는 한 달 후 꿈에 그리던 한국 땅을 밞았다. 행복할 것만 같던 순간도 잠시. 그는 남북한 문화 차이로 예상치 못한 고통과 마주했다.


"생각보다 문화가 많이 다르더라고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한국 사람들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란 표현을 자주 하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이런 표현을 잘 안 해요. 사람이 무게 없이 가벼워 보이고, 아첨꾼 같다고 말이죠. 이런 차이를 처음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더라고요."


남과 북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씨는 다양한 노력을 했다. 한국의 '유머코드'를 이해하려고 TV 개그 프로와 코믹 웹툰을 몰아서 보기도 했다. 그 연장 선상에서 탄생한 게 바로 웹툰 '로동심문'이다.


"남과 북이 분단된 후 70여 년이 흘렀잖아요.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문화 차이도 생겼고요.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우리는 모두 한민족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남과 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고민 끝에 전공을 살려 웹툰으로 표현해 보기로 했어요."


지난 5월 연재를 시작한 '로동심문'이 어느새 연재 6개월을 맞게 됐다. 

"이제껏 주로 다룬 내용은 남과 북의 '차이'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같음'을 표현하고 싶어요. 남과 북의 차이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웹툰을 그리고 싶습니다."


오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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