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모두 살아보니 ‘문화통일’이 가장 강력”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0.17 조회수 240

탈북자 출신 첫 웹툰작가 최성국씨

탈북자 출신 첫 웹툰작가 최성국씨



최성국(36)씨는 탈북 7년차 청년이다. 자신보다 2년 앞서 탈북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요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 정도다. 주말에도 평일과 다름없이 출근해 일을 한다. 가끔 시간이 나면 한강 둔치를 찾아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여가활동이다.

그는 그림을 그린다. 바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 5월 네이버 웹툰 ‘도전만화’ 코너에서 시작한 <탈북남의 열혈 남한 정착기-로동심문>이 호평을 받아 이달 초 ‘베스트도전’ 코너로 승격됐다. 이 만화로 최씨는 첫 탈북자 출신 웹툰작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 출신
‘한국영화 유포죄’로 평양서 추방
어머니 뒤따라 남한 정착 7년째

‘탈북남 열혈 남한 정착기-로동심문’
네이버 연재 두달만에 ‘베스트’ 선정
“편견탓 오해 생겨 외롭기도 하지만…”

그는 지난 1월에 도서출판 꼬레아우라 정직원으로 채용돼 월간 <영웅>에 ‘남돌이의 평양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또 인터넷방송인 <배우고 나누는 티브이>에서 주1회 ‘최성국의 북한그림판 코너’도 맡고 있다.

그가 연재하는 웹툰에 대한 댓글의 90% 이상이 칭찬이다. 주인공인 탈북자 용철씨의 좌충우돌 남한 체험을 통해 남과 북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 차이를 그리는데, 유익하고 ‘꿀잼’이라는 반응이 많다. “(댓글이) 너무 일방적이에요. 북한도, 사회주의(체제)도 아닌데, 하하.”

지난 11일 서울 꼬레아우라 사무실에서 만난 최씨는 “그동안 북한 문제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접근해왔다”며 ‘문화통일’이란 얘기를 했다. “총칼이 무섭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은 문화입니다. 북한에서 ‘한국 문화’를 팔았던 제 경험에 비춰볼 때 문화만큼 먹혀들어가는 것이 없어요.” 이 문화통일을 위해 자유민주주의 관점에서 사회주의 체제의 문화를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북에서 최고의 직장인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에서 일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들어간 촬영소에선 한 달에 두 편씩, 100편이 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김정일을 위한 외화벌이 회사였죠.” 매달 고기와 설탕을 배급받고 연말이면 티브이나 냉장고까지 받을 수 있는 꿈의 일터였지만 스스로 그만뒀다. 같은 일을 하던 외국인의 보수가 훨씬 많다는 걸 알고 ‘나도 돈을 벌어야겠다’고 맘먹은 것이다.

“한국영화 시디를 만들어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렇게 번 돈 200만원을 김정일에게 바쳤지요. ‘김정일에게 기쁨을 드린 사람’이라고 해서 북한 청년 최고의 상인 ‘김일성 청년영예상’도 받았어요. 2007년 <조선대백과사전>을 보면 제 이름이 나옵니다.” 2006년 한국영화 유포죄란 ‘중대혐의’로 체포됐지만 그나마 6개월 만에 ‘평양 추방’으로 처벌이 마무리된 것도 앞선 공적이 고려된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탈북 초기만 해도 문화예술 활동은 그만하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만화를 권하는데, 자신이 없었어요. 여기서 본 만화들이 내가 보기에 너무 재미없었어요. 내 그림을 보여줘도 재미없어 했죠.” 이런 웃음 코드의 차이는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조금씩 재밌는 그림이 생겨났어요. 대학생들의 학교 생활 이야기를 그린 <복학왕> 같은 만화가 재밌더군요. ‘개콘’도 그렇고요. 회사 생활하면서 (남쪽) 유머도 이해하게 되었어요.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어요.”

탈북자들이 너무 성마르고 폭력적으로 그려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습니다. 서로 있는 그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오픈해야 합니다.”

그는 보수단체가 여는 토론회에도 발제자 등으로 자주 얼굴을 내비친다. 북한 체제뿐 아니라 남한의 진보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과도한 민주주의”이며, 남한 진보운동의 종착점이 지금의 북한 체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국회 권력지형이 바뀐 지난 4·13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내가 찍은 사람이 떨어져 스트레스 받는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국민은 스승입니다. 국민의 눈은 굉장히 정확해요. 기득권을 지키는 차원에서 딴소리로 선동하는 보수나 진보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들이 너무 황당한 주장을 하면 국민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남한 정착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편견’이었다고 했다. “같은 일을 해도 탈북자가 하면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편견을 갖습니다. 이 때문에 오해가 쌓여 일이 커질 때가 종종 있죠. 외로움도 생기고요.”

‘10년 뒤의 계획’을 묻자 “문화예술 분야에서 종사하고 싶다”고 답했다. “특히 통일 뒤에도 문화로 남과 북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7527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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