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위노심초사
국가안위노심초사
  •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 1910년 3월 안중근(安重根)이 여순(旅順) 감옥에서 쓴 글씨로, 2폭 보물 제569-22호 및 보물 제569-23호.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는 안중근이 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행서 글씨 두 폭이다. 그 가운데 한 폭은 오른쪽 위에 "증안강검찰관"이라 쓰여 있듯이 안중근 의사가 이곳에 있을 때 자신의 취조를 담당했던 여순검찰청 야스오카 세이시로 검찰관에게 써준 것이다. 야스오카는 사망하기 직전 이 유묵을 큰 딸 우에노에게 물려주었고, 그 뒤 동경 국제한국연구원의 최서면 원장을 통하여 1976년 2월 11일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되었다.


  •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의 안위를 마음으로 애쓰고 속을 태움) 8자를 중앙에 행서체로 쓰고, 왼쪽 위편에 “증안강검찰관(贈安岡檢察官)”, 오른쪽 아래편에 “경술삼월(庚戌三月) 여순옥중(旅順獄中)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근배(安重根謹拜)”라 쓰여 있으며, 그 밑에 안중근 의사의 장인(掌印:손바닥으로 찍은 도장)이 먹물로 찍혀 있다.
위국헌신군인본분
위국헌신군인본분
  •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 보물 제 569호로, 1910년 3월 안중근(1879∼1910)이 여순감옥에서 남긴 유묵 중의 하나이다. 2폭으로 안중근의사 기념관(安重根義士紀念館)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안중근이 1910년 3월 26일 여순 감옥에서 순국 직전, 안중근의사의 공판정 왕래에 경호를 맡았던 일본헌병 지바(千葉十七) 간수에게 써준 것이다. 이 유묵을 보관하던 지바가 죽자 그의 부인과 조카딸 미후라가 이어 보관하였으며, 1980년 8월 23일 동경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 원장을 통해 안중근의사 숭모회에 기증되었다.


  • 특히 이 2폭의 유묵(국가안위 노심초사, 위국헌신 군인본분)은 여순 감옥에서 자신을 취조한 일본 검찰관과 경호담당 헌병에게 각각 써준 것으로, 서예적 가치는 물론 일본인조차 안중근의 충절과 의리에 심복하여 애지중지하던 유묵이란 점에서 그 가치는 더욱 높이 평가된다.
견리사의견위수명
견리사의견위수명
  • 이익을 보거든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친다.
    곧 눈 앞의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지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친다는 뜻이다.


  • 보물 제569-6호로 지정되었다. 한지에 휘호되었으며,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 안의사기념관에 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안의사의 의로운 생애를 결집한 명언으로 평가된다.


  • 논어에서 나오는 글귀로 "이익을 보거든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치고,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전날의 자기 말을 잊지않고 실천하는 것이다"라고 한 공자의 말에서 인용된 글이다.